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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철학자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다시 떠오르다

by 타오라 2025. 5. 22.

한때 "삶은 고통이다"라는 선언으로 철학계에 깊은 자취를 남겼던 \*\*아르투어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는, 19세기 유럽 철학자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어두운 세계관과 금욕주의적 삶의 태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습니다. 유튜브를 보면 니체와 더불어 명언 쇼츠에 자주 등장하죠! 단순히 과거의 철학자로 잊히지 않고, 현대인의 내면적 고통과 삶의 방향에 실질적인 통찰을 던져주는 존재로 떠오르고 있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 이미지와 '세계는 나의 표상이다' 텍스트 이미지
쇼펜하우어


이 글에서는 쇼펜하우어라는 인물의 삶, 그의 가족관계와 여성관, 철학적 사유, 니체와의 비교, 모순된 성격, 그리고 그가 다시 주목받는 시대적 배경까지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1. 인물 소개: 고독한 사유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1788년 프로이센의 단치히(현재 폴란드 그단스크)에서 상인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계몽주의적 합리주의자였고, 어머니는 독일 문단에서 활약하던 작가 요한나 쇼펜하우어였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 상인이 되기를 기대한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철학에 심취하여 학문적 길을 걷게 됩니다. 그의 대표작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Die Welt als Wille und Vorstellung)』로, 여기서 그는 세계의 본질을 '맹목적인 의지(Wille)'로 규정하며 비관주의 철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2. 가족관계와 여성관: 상처에서 비롯된 세계관

2-1. 아버지의 죽음과 상속

쇼펜하우어는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자라났으며, 1805년 아버지가 의문사(자살로 추정)한 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는 이 유산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면서 평생 경제적으로 불편함 없이 독립적인 철학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 안정성 덕분에 그는 교수직에 의존하지 않고도 철학을 쓸 수 있었고, 사회적 제도나 학계와의 충돌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2-2. 어머니와의 불화

쇼펜하우어의 어머니 요한나는 당대 유명한 문학 살롱을 운영할 정도로 사교적이고 외향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그녀를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라 비난했고, 두 사람은 격렬한 갈등 끝에 거의 절연하게 됩니다. 이 갈등은 쇼펜하우어의 인간혐오적 성향과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는 배경이 됩니다.


2-3. 여성관과 결혼관

쇼펜하우어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으며, 여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비하하는 글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는 『여성에 대하여(Über die Weiber)』라는 에세이에서 여성을 "자연이 만든 절충적 창조물"이라 묘사하며, 이성보다 감정에 지배당하는 존재로 폄하했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젊은 시절 육체적 관계를 가졌고, 두 명의 혼외 자녀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아이는 모두 어려서 사망했으며, 쇼펜하우어는 자녀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습니다. 이는 그의 금욕주의 철학과 삶의 괴리를 드러내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3. 철학의 핵심: 의지, 고통, 그리고 해탈

쇼펜하우어 철학의 중심에는 '의지' 개념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가 이성적 목적이 아닌, 맹목적인 '의지'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았습니다. 욕망, 충동, 생존 본능 등이 모두 이 의지의 표현이며, 그 결과 삶은 본질적으로 고통스럽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로 '의지의 부정'을 제시했습니다. 금욕, 예술 감상, 깊은 연민, 명상 등을 통해 의지의 작용을 멈추고 일시적 해탈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부분은 불교의 무욕 사상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철학은 결정적인 모순도 내포합니다. 세계의 본질이 의지라면, 의지를 억제하는 것도 의지의 작용이라는 점에서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이 모순이 바로, 니체가 쇼펜하우어를 넘어선 지점이기도 합니다.

4. 니체와의 관계: 계승자이자 반역자

니체는 젊은 시절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깊은 충격을 받았으며, "정신적 스승"이라 부르며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곧 쇼펜하우어의 금욕주의와 해탈 중심의 철학을 비판하며, 고통을 부정하지 않고, 그 자체를 긍정하는 '힘에의 의지(Wille zur Macht)'를 주장하게 됩니다.

비교 항목 쇼펜하우어          니체
세계의 본질 맹목적 의지 → 억제해야 함 힘에의 의지 → 창조적으로 긍정해야 함  
고통에 대한 태도  피하고 해탈해야 할 것  끌어안고 승화시켜야 할 것
구원 방식   금욕, 예술, 명상 자기 초월, 예술, 운명 사랑(Amor fati) |
 여성관   여성혐오적, 배타적  양가적이지만 상대적으로 유연함      

 

니체와 쇼펜하우어 이미지
니체와 쇼펜하우어

니체는 쇼펜하우어를 철학적 반면교사로 삼아, 비극적 인간 존재를 적극적으로 재해석하려 했습니다.
(쇼펜하우어가 사망당시 니체는 16세 였고 둘이 만난 적은 없습니다. 니체가 쇼펜하우어에 매료된 것은 21세 무렵입니다.)

5. 모순된 성격: 철학과 인간 사이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철학을 세상에 설파했지만, 그의 일생을 들여다보면 말과 행동이 크게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 금욕주의를 주장하면서도 여러 여성과의 관계를 피하지 못했고,
* 연민을 윤리의 기초라 말하면서도 하녀를 계단 아래로 밀쳐 척추가 부러지는 큰 장애를 입게하여, 법적 소송까지 겪었으며, 이후에도 '노파가 죽으니 짐도 사라졌군'이라고 자기가 쓴 책 마지막에 문장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 의지를 부정하라면서도 분노와 공격성을 자주 드러냈습니다.

그는 헤겔, 피히테 같은 당대 철학자들을 향해 "지적 사기꾼"이라며 극렬한 비난을 퍼부었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지내며 세상에 대한 환멸을 키워갔습니다. 이런 극단적 성격과 반복되는 모순은, 그가 말한 "삶은 고통이다"라는 진단이 단순한 철학적 명제가 아니라 **삶의 체험에서 길어올린 절규**였음을 보여줍니다.

6. 왜 지금 쇼펜하우어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도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 현상이 관찰됩니다. 특히 20~40대 사이에서 '고통의 철학자' 쇼펜하우어를 다시 읽는다 는 흐름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만성적 불안과 생존 경쟁 속에서 삶의 무게를 체감하는 세대**에게,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현실 도피가 아닌 현실 직시의 도구가 됩니다.
- 자기계발 담론에 대한 피로감** 속에서, 쇼펜하우어는 그 반대편 극단에서 새로운 균형을 제안합니다.
- 정신적 고통과 공허를 품은 시대 분위기**에, 그의 비관주의는 오히려 진실하게 느껴집니다.
- 미니멀리즘, 금욕, 명상, 비자발적 독신** 같은 라이프스타일의 유행은 그의 철학과 묘하게 연결됩니다.

그는 '희망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위로가 되는 철학자'로 다시 읽히고 있는 셈입니다.

쇼펜하우어 책 읽고 있는 여성 이미지
ai 그림 - 쇼펜하우어 책 읽은 여성



7. 마무리: 철학은 삶으로 증명된다

쇼펜하우어는 철저히 외롭고 분노하며, 자기 모순에 갇혀 있었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모순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자체가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미리 살아낸 기록일 수도 있습니다.

그는 완전한 철학자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보다 **삶의 어둠을 직시하고, 그로부터 사유를 길어 올리려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우리가 쇼펜하우어를 지금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인지도 모릅니다.